1934년 충북 증평 장동에서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왕철수 화백은 1950년 청주사범학교에 입학, 한국전쟁 발발로 다시 대전사범학교로 편입 후 1953년 졸업했다. 19세부터 교사 생활을 시작해 1999년 정년퇴임까지 46년 동안 청주와 충북 지역에서 평교사로 재직했다. 1971년 청주문화원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2003년 청주 예술의 전당에서 《고희 기념 초대전》까지 9회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1985년 『충주댐 수몰지역 풍경화집』을 발간하며 신단양문화원과 청주예술관에서 각각 개인전을 개최했다. 이후 1991년 《백두산 풍경전》, 1996년 《고향의 사계전》, 1998년 《대청호반 풍경전》을 통해 노장의 나이에도 훼손되지 않은 자연의 풍경을 화폭에 담고자 하는 열정의 결과물을 발표했다. 왕철수 화백은 1979년 한국미술협회 청주지부장 역임, 1986년 충청북도 문화상, 단재학술상과 1994년 충북미술대전 초대작가상을 수상하며 충북을 대표하는 구상화가로써의 지역의 예술 활성화를 위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작가관
청주를 대표하는 향토작가이자 미술교사, 충북의 기록화가로도 유명한 왕철수 화백은 충북의 산하와 소박한 일상을 주제로 평생 현장 사생을 통한 풍경화 작업에 천착했다.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과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애정은 누군가는 꼭 해야 한다는 고집으로 충북의 명소와 자연을 사생을 통해 꾸준히 기록했다. 현대미술의 다양한 시류에도 오직 고향 풍경에 대한 현장 사생으로 독자적 영역을 구축한 작가는 2004년 작고하기 전까지 “보는 눈, 느끼는 가슴, 그곳에 닿을 수 있는 다리, 떨리지 않는 손으로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리고 싶다”라는 바람처럼 작업실이 아닌 고향의 산과 들에서 충북의 정서를 풍경으로 남겼다.
왕철수는 직접 경험한 장소성을 무엇보다 중시하여 같은 장소를 여러 번 방문하여 몇 번이고 반복(봄, 여름, 가을, 겨울 또는 앞, 뒤, 옆면 등)해 그리고 있다. 똑같은 곳을 수십 번 가더라도 늘 자연과 구도는 변화해서 또 그릴 자리가 생긴다는 것이 그의 지론으로 자연에 대한 한결같은 애정을 드러낸다. 그래서 감상하는 이의 마음을 더 정겹고 애잔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는 충북의 모습을 발길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마다않고 담았다. 대표적 작품으로는 단연 지금은 사라져 버려서 마지막 풍경이 된 충주댐 수몰 지역 2백 리 길을 3년여에 걸쳐 기록으로 담아낸 풍경이다. 그 이후 단양팔경, 소백산, 화양동, 대청호 주변, 청주 무심천, 음성, 진천, 보은 속리산, 옥천, 영동 등 그가 그린 모든 충북의 풍경은 오로지 고향에 대한 그의 애향심으로 그려낸 고향 산천인 것이다.
손명희, 「그림 그리기 좋은 날, 충북의 빛을 그리다」, 『그림 그리기 좋은 날』, 청주시립미술관, 2019, 20-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