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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박물관] [기고] 호리 카즈오와 태정관 지령, 독도는 일본령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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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0회 작성일 26-04-1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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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보 | 발행일 2026-03-19 19:28
[기고] 호리 카즈오와 태정관 지령, 독도는 일본령이 아니다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60319580275



일본 시마네현에서는 올해도 어김없이 2월22일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강행했다.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하는 이 장면은 이제 낯설지 않다. 뉴스 화면을 통해 익숙해진 그 풍경 앞에서 독도는 늘 감정의 언어로 먼저 다가왔다. 그러나 독도 문제의 이면에는 감정과는 별개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소리 높인 주장이나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오래된 문서 한 장이 묵묵히 전하는 기록의 이야기다. 그 기록을 다시 세상에 드러낸 인물이 일본 학자 호리 가즈오(堀和生)다.


1987년 당시 30대 후반의 교토대 사학자였던 호리 박사는 일본 국립공문서관에서 ‘태정관 지령’(1877년)을 발굴했다. 메이지 정부 최고 행정기관이었던 태정관이 내무성에 전달한 이 문서에는 분명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울릉도(죽도) 외 1도는 일본과 관계없음을 명심할 것.” 이는 단순한 내부 검토 의견이 아니라 중앙정부가 공식 절차를 거쳐 행정 판단으로 내려졌다.
 

지령에는 한참 뒤인 2006년 발견된 ‘기죽도약도’라는 부속지도도 함께 첨부돼 있었다. 지도 속에서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 영토와 분명히 구분된 모습으로 확인된다. 19세기 후반 일본 정부가 이 섬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더 이상의 해석이 필요 없을 만큼 분명히 알 수 있다. 독도 문제는 여기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기록과 법리의 문제로 실체를 밝혀 주고 있다.


이 문서는 1905년 시마네현의 독도 편입 고시와 자연스럽게 대비된다. 일본 정부는 러일전쟁 중 독도를 무주지로 보고 선점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약 30년 전 같은 정부가 “관계없다”고 판단했던 섬이 어느 순간 주인 없는 땅이 됐는지에 대한 논리적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상태다. 더구나 영토 편입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 고시 형식으로 처리했다는 점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국제법에서는 국가의 말과 행동의 일관성을 중요하게 판단한다. 한 국가가 공식적으로 표명한 입장은 이후의 주장과도 연결돼 해석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른바 ‘금반언(禁反言·Estoppel)의 원칙’이 거론되는 이유다. 물론 구체적인 법적 적용을 둘러싼 논의는 신중해야 한다. 다만 과거의 공적 기록과 이후의 정책 사이에 놓인 간극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는 여전히 남는 질문이다.

 
이 대목에서 호리 가즈오라는 이름은 깊은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는 한국의 주장을 대변한 인물이 아니다. 일본 학자로서 일본 정부의 문서를 읽고 그 문서가 말하는 바를 그대로 세상에 내놓았을 뿐이다. 국가의 입장에 편승하지도, 시대의 분위기에 침묵하지도 않았다. 그의 작업은 외부의 비판이 아니라 내부의 기록이 스스로 말하게 한 결과였다.
독도는 우리에게 역사적·정서적 의미가 깊은 공간이다. 그렇기에 더욱 이성적인 언어가 필요하다. 감정이 앞서기 쉬운 문제일수록 기록은 오히려 차분하게 읽혀야 한다. 호리 가즈오가 찾아낸 ‘태정관 지령’은 독도 문제가 단순한 외교 분쟁이나 민족 감정의 대상이 아님을 보여준다. 동시에 근대 국가가 남긴 문서와 그 일관성을 묻는 문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조용히 증언한다.


독도를 둘러싼 논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목소리가 커질수록 기록은 더 낮은 자리에서 오래 남는다. 150여년 전 일본 정부 스스로 남긴 한 장의 문서는 오늘의 주장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 질문 앞에서 우리가 할 일은 분노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문서를 다시 펼치는 일일지 모른다. 독도를 지키는 또 하나의 방식은 그렇게 기록을 끝까지 읽는 데서 시작된다.

노상학 <지적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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