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민아트센터] 2022 주제기획 《어떤 사물, 그리고 몸짓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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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제목 : 어떤 사물, 그리고 몸짓들
- 전시기간 : 2022.8.24 – 10.29
- 관람시간 : 월-토, 10:00-19:00(매주 일요일 휴관)
- 참여작가 : 김수연, 박선호, 박윤주, 이안리, 장입규, 최고은
- 후 원 : 충청북도, 충북문화재단, 우민재단
- 주 최 : 우민아트센터
- 홈페이지 : www.wuminartcenter.org
모든 사물들 속에는 노래가 잠들어 있다,
이들은 그곳에서 줄곧 꿈만 꾸고 있어,
그러다가 세상은 노래하기 시작한다네,
네가 한마디 주문을 던지는 순간
- 요제프 폰 아이헨도르프(Joseph von Eichendorff)의 시 <마술지팡이>에서
우리는 사물로 둘러싸인 세상에 살고 있다. 《어떤 사물, 그리고 몸짓들》은 사물과 몸짓을 중심으로 예술 창작의 과정을 살펴보려는 시도다. 전시 제목에서 ‘사물’은 물질세계에 있는 모든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존재를 의미한다.1 ‘몸짓’은 의도와 행위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물리적 움직임을 의미하는데, 빌렘 플루서의 말에 따르면 예술 창작이란 세련되고 정밀한 풍부한 기호 체계를 드러내는 몸짓과 같다.2 곧 이번 전시는 사물을 중심으로 예술가의 다양한 몸짓과 그 이면의 의도, 과정, 결과를 살펴보는 자리로 마련된다.
인간은 직접 사물을 감지하기도 하지만, 다양한 사물을 매개로 감각적 실천이 일어나기도 한다.3 감각은 신체를 넘어 물질적이며 감각은 몸뿐만 아니라 사물을 매개로 실천된다. 우리는 일상 여러 영역에서 사물 그리고 공간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번 전시는 작가의 몸짓을 통해 사물이 다뤄지는 양상과 함께 사물이 창작의 방향을 유도할 가능성에도 주목한다. 창작자의 내면 어딘가에 어떤 개념과 아이디어가 저장되어 있어서 그것을 소환해 사물을 대상으로 다루며 행위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사물을 들여다보고 사물과 상호작용하는 와중 어떤 감각이 촉발되어 작업의 경로가 정해지는, 인간과 사물이 서로 영향을 주는 과정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곧- 이번 전시는 사물을 중심으로 작가의 창작을 바라보는 자리다. 일상의 사물이 기존의 기능과 형태, 의미, 전형적 이미지를 벗고 예술의 영역에 들어와 창작자의 몸짓에 따라 새로운 옷을 입고 작품에서 벌이는 모험에 관한 것이다. 창작자는 아이디어와 개념, 감각을 어디까지 물질로 구현할 수 있을 것이며, 사물의 세계는 인간의 감각을 어떻게 드러낼 수 것인가? 인간의 생각과 감각은 사물과 어떻게 맞물리는가? 이 모든 시도들 앞에서 관람자는 무엇을, 어떻게 감각할 수 있을까? 전시는 이러한 여러 질문에서 나아간다.
김수연은 무엇을 어떻게 그릴지 고민한다. 심상을 물질적 매개 없이 그리는 것에 의구심을 갖고 마주하고 싶은 장면이나 풍경, 대상을 생각한 뒤 사진을 수집하여 나름의 이미지를 구상한 다음 이를 바탕으로 입체 오브제를 제작한 뒤 그것을 모형(사물) 삼고 회화 작업을 한다. 허구와 진실 사이에 있는 백과사전의 신기한 일화, 시들어가는 꽃, 순간을 포착하기 어려운 날씨 등 그가 그리기를 희망하는 소재는 상상하거나 감각할 수 있지만 견고한 물질로 존재하거나 명확히 재현하기 어려운 소재다. 작가는 내면의 생각과 감정, 이미지에 물질성을 부여하는 과정을 거치며 본래 소재로 택했던 것의 영속하지 않거나 불가사의한 속성을 현실의 물질로 전복한다. 종이 모형을 빠른 호흡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손의 감각과 내면의 상상은 연동되며 확장된다. 그럼으로써 무엇을 어떻게 회화로 그려낼지 답을 찾아간다.
박선호는 사적 기억-정보-이미지로 구성된 꾸러미를 만들어내는 일에 호기심을 갖고 작업하고 있다. 구술 기록을 기반으로 미시사와 거시사, 개인사와 사회사를 엮어내고, 당대의 사회, 경제, 정치사를 개인의 삶과 연결하여 작품의 형태로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업에서 마이크로 레코더와 유리 조각 같은 사물들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끌어내는 사물-주체로 등장한다. 양쪽 면에 서로 다른 이야기를 녹음할 수 있고 재생/역재생이 가능한 레코더 자체의 물리적 특성은 하나의 레코더에 한 시대의 다층적인 면을 담아내는 계기로 작용한다. 서로 다른 무늬와 색상, 모양의 유리 조각을 뒤섞는 손의 움직임은 타인의 그림을 해석하는 여러 마음의 작용과 맞물리며 내러티브를 발생시킨다.
박윤주는 ‘사물의 생동감’을 주제로 작업하고 있다. 그는 어떤 소설적 무드에서 사물에 물리적/철학적 움직임을 가한다. 이때 사물은 운동성을 가지고 상태가 바뀌는 과정을 거쳐 생동(vitality)을 얻게 된다. 작가는 이 생동감을 시각화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작업하고 있다. 최근엔 공공 영역이 디지털 영역으로 확장되는 변화 속에서 가상 영역에 비물질 데이터로 구성된 오브제를 구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물이 온전히 비물질세계로 이동하기 이전, 실제의 형태와 무게를 가진 사물이 현실세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죽음을 맞는 과정을 사고와 우연성에 기댄 퍼포먼스 영상 작업을 통해 보여준다.
이안리는 사물을 잇고 조합하여 새로운 시각적 양상과 의미를 만들어낸다. 그의 작업실은 마치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y)처럼 수집된 사물이 끊임없이 쌓이고 특유의 질서에 따라 구성되는 공간과 같다. 작가는 주변의 사물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정서적 연결고리를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발견된 사물’은 기존의 것과 잇고 엮고 조합하는 등 수공의 몸짓을 거쳐 ‘나의 세계를 구성하는 사물’이 된다. 그의 작업은 작가의 자아와 경험, 감정과 삶이 사물에 배이며 하나의 소우주를 형성하는 과정이자 세계와 나의 접점을 사물들을 물리적으로 결합함으로써 드러내는 과정과 같다.
장입규는 디지털 매체와 그로부터 생산되는 이미지의 본성, 그리고 디지털 시대의 편집과 관련된 미학에 흥미를 갖고 탐구를 지속하고 있다. 작가는 ‘잘라내기’, ‘붙여넣기’, ‘복사하기’ 같은 디지털 편집 방식을 활용하여 실제 사물이나 공간을 정교하게 편집하여 설치나 조각의 형태로 표현하거나 역으로 그것을 촬영해 사진으로 전환하여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합성된 디지털 콜라주 이미지처럼 보여주기도 한다. 작가는 디지털 편집 방식을 아날로그 사물과 공간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디지털 이미지를 보는 방식과 현실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는 동시에 변증법적 통합을 유도하며 변화하는 디지털 세상이 우리의 지각방식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질문한다.
최고은은 사물의 존재적 가치와 시대가 물질을 생산하고 다루는 특유의 방식에 주목해왔다. 기성품에 속하지 않은 것이 없는 시대, 사물을 레디메이드의 형식으로 가져와 특별한 어떤 작품으로 격상시키기보다 이 사물이 어떻게 조각적으로 구현되고 공간에서 존재할 수 있는지 탐색한다. 작가는 일상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가전 같은 기성 오브제의 기능이나 사회문화적 의미를 배제하고 사물 자체가 가진 순수한 재료와 색감에 집중하여 미학적 지점을 도출한다. 어떤 물질이 기성품의 형태로 대량생산되고 복제되며 익명의 사람들에 의해 소비되며 미감이 공유될 때, 그 사물이 상품이자 이미지로서 점차 추상화되어가는 양상에 주목한다.
이처럼 본 전시는 창작자의 개념과 아이디어, 감각이 사물을 경유하여 물질화되는 양상, 사물 그리고 특정한 몸짓을 통해 자기만의 시각 체계를 만들어가는 양상에 주목한다. 작업에서 사물은 아이디어를 물리적/감각적으로 드러내고, 특정한 이미지와 움직임,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사물-주체 내지는 매개체, 발화체로 존재한다. 한편 전시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관람자가 각 작가의 작업에서 사물을 발견하고 그것이 작업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창작자는 그 사물을 어떻게 다루는지 그 몸짓들을 개별적으로 상상해보도록 유도하고자 했다. 그 과정은 완결된 작업 앞에서 오히려 시간을 거슬러 처음의 작업 재료, 사물을 발견하고 그것을 팅커링(tinkering)하는 작가의 몸짓을 상상하는 시간 역행의 과정이 될 것이다.
세상의 기술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일상에서 비물질, 데이터로 구성된 가상의 영역은 점점 확대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붙잡는, 우리 곁의 많은 사물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세상이 달라지더라도 어떤 사물들이 여전히 우리에게 주는 감각과 의미, 영감이 사라지거나 무의미해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1 전시의 영문명은 tinkering with the objects로, 사물을 만지작 만지작하며 생각을 구체화하는 마음의 작용을 의미한다.
2 몸짓의 개념은 빌렘 플루서의 정의를 참조했다.
빌렘 플루서, 『몸짓들: 현상학 시론』(워크룸 프레스, 2021)
3 김은성, 『감각과 사물 : 한국 사회를 읽는 새로운 코드』 (도서출판 갈무리, 202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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